▲ 고대 지중해 무역선. 배 한 척이 곧 전 재산이었다. 이 거대한 위험을 나누기 위해 모험대차가 발명됐다.
고대 지중해를 누비던 무역선들에게 배 한 척은 곧 상인의 전 재산과도 같았습니다. 이 거대한 위험을 누군가와 나누어 짊어지기 위해 발명된 것이 바로 모험대차입니다.
이번 2부에서는 지중해의 거친 파도 속에서 왜 한 번의 항해가 전 재산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도박이었는지를 살펴보고, 배가 돌아오면 130%를 갚고 침몰하면 0%가 되는 모험대차(Bottomry)의 구조를 완벽하게 해부해 보겠습니다. 나아가 이것이 화물대차(Respondentia)로 진화하며 현대 보험에 남긴 3가지 위대한 유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지난 1부에서 1688년 런던 로이즈 커피하우스의 서명(Underwriting) 시스템을 살펴보았다면, 그 진정한 씨앗은 무려 4000년 전 나침반조차 없던 더 거친 바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인들이 어떻게 목숨을 담보로 돈을 빌렸는지, 그 절박함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매일 쓰는 재보험 계약서의 원형이 되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지중해는 지금의 월스트리트와도 같았습니다. 올리브오일과 와인, 곡물, 향신료가 쉴 새 없이 오갔지만, 문제는 항해 자체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는 점입니다. 기상 예측 시스템이 전무했던 시절이라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지중해의 스콜 앞에서는 거대한 무역선도 종이배처럼 뒤집히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로도스나 크레타 해역은 악명 높은 해적들의 소굴이었기에, 운 나쁘게 배를 빼앗기기라도 하면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가 90년대 초반 선박보험 클레임 실무를 처리하며 만났던 선주들의 눈빛에는 배 한 척이 우리 회사의 전부라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2000년 전 로마의 선주가 느꼈을 그 공포와 현대 선주들의 공포는 시간을 뛰어넘어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 * 기상예측 전무: 갑작스러운 지중해 스콜에 배는 종이배처럼 뒤집혔다
- * 해적의 바다: 로도스, 크레타 해역은 해적의 소굴. 배를 빼앗기면 상인은 노예로 팔려갔다
- * 35년 현업의 시선: 제가 90년대 초 선박보험 클레임을 처리할 때, 2000년 전 로마 선주가 느꼈을 공포와 똑같은 공포를 선주 눈에서 봤습니다. "배 한 척이 회사 전부입니다"라는 말은 2000년이 지나도 같다
2. 모험대차(Bottomry) 구조 완벽 해부: 배가 돌아오면 130%, 침몰하면 0%
이러한 극도의 공포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모험대차, 즉 바텀리(Bottomry)입니다. 여기서 '바텀(Bottom)'은 선박의 밑바닥, 다시 말해 선체 자체를 의미합니다. 배 밑바닥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이 계약은 기원전 1700년경부터 17세기까지 이어졌으며, 그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입니다. 상인인 선주가 자본가에게 배를 담보로 항해 자금 100을 빌린 뒤, 배가 무사히 항구로 돌아와 무역으로 돈을 벌게 되면 원금 100에 해상 이자 30%를 얹어 갚습니다. 하지만 폭풍이나 해적을 만나 배가 침몰해 버리면 원금 100과 이자 30%는 모두 탕감되어 상인은 아무것도 갚을 의무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자본가가 챙겨가는 이자 30%가 바로 이 계약의 핵심입니다. 당시 일반적인 대출 이자가 10% 이었다고 가정할 때, 나머지 20%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인의 위험을 대신 짊어져 주는 대가, 즉 오늘날의 보험료(Premium)였습니다. 이 구조는 현대 보험이 요구하는 세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침몰의 위험을 자본가에게 넘겼다는 점에서 현재 원수사가 리스크를 재보험사에게 넘기는 출재(Cession)와 100% 동일한 '위험의 이전(Risk Transfer)'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일반 이자보다 높게 책정된 해상 이자(Maritime Interest) 속에 순수 이자와 위험 보험료를 함께 녹여냄으로써 현대 언더라이팅의 근간이 되는 '보험료' 개념을 탄생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항해의 성공 여부라는 철저히 '우연한 사고(Fortuitous Event)'를 계약의 조건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고의 사고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우연성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현대 보험 요건 | 모험대차에서 어떻게 구현됐나 | 35년 실무자가 보는 포인트 |
|---|---|---|
| Risk Transfer 위험의 이전 | 개인이 감당 불가한 침몰 위험을 자본가에게 넘김 | 지금의 재보험 출재(Cession)와 100% 동일. 원수사가 리스크를 Reinsurer에게 넘기는 행위 |
| Premium 보험료 | 일반 이자보다 높은 해상 이자(Maritime Interest) | 해상 이자 = 순수이자 + 위험보험료. 이게 Burning Cost의 원형 |
| Fortuitous Event 우연한 사고 | 항해 성공 여부라는 우연성 | 보험사고의 우연성 원칙. 고의면 보험금 안 주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 |
3. 선박에서 화물로: 화물대차(Respondentia)로의 진화와 3가지 유산
시간이 흘러 무역의 규모가 더욱 커지자, 배의 주인인 선주와 화물의 주인인 화주가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파도 속에서 배는 멀쩡히 살아남았는데 화물만 바다에 버려지거나 유실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박을 담보로 하던 모험대차는 화물 버전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책임을 진다는 뜻의 라틴어 'Respondere'에서 유래한 화물대차(Respondentia)입니다. 배가 가라앉으면 빚을 탕감받는 모험대차와 화물이 유실되면 빚을 탕감받는 화물대차의 이러한 명확한 구분은, 훗날 현대 해상보험이 선박을 담보하는 선체보험(Hull)과 화물을 담보하는 적하보험(Cargo)으로 나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1700년경 함무라비 법전 제103조에 도적이 화물을 빼앗으면 빚을 면제한다고 적힌 조항은 무려 3700년이 지난 지금의 적하보험 약관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 * 모험대차(Bottomry): 배(선체)를 담보. 배가 가라앉으면 빚 탕감
- * 화물대차(Respondentia): 화물을 담보. 화물이 유실되면 빚 탕감
결과적으로 모험대차가 현대 보험에 남긴 위대한 유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 상법 제3편 해상편 바로가기 (공동해손 제704조~)
* 국세청 홈택스 / 손택스 활용법: 해상보험료는 법인의 손금 처리, 보험금은 익금 처리됩니다. 보험료 세액공제는 연말정산 간소화에서 확인
국세청 홈택스 바로가기 | 손택스 앱 다운로드 (보험료 자료 조회)
- 사용법: 홈택스 > 로그인 > My홈택스 > 연말정산 간소화 > 보험료 > 보장성/일반 보험료 구분 확인 후 세액공제 적용
* Lloyd's History: Bottomry에서 Lloyd's로 이어지는 공식 타임라인
Lloyd's Official Archive - Bottomry to Modern Insurance
5. 결론 및 요약
다시 한번 핵심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선박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배가 침몰하면 빚이 사라지는 최초의 보험인 모험대차에서, 일반 이자를 초과하는 20%의 금리가 바로 보험료의 시초였습니다. 이후 선주와 화주가 분리되면서 화물을 담보로 하는 화물대차로 진화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선체보험과 적하보험을 나누는 뚜렷한 기원이 되었습니다. 4000년 전 위험을 나누고자 했던 이 절박한 철학은 런던 로이즈 커피하우스를 거쳐 현재의 재보험 특약과 K-ICS 위험분산 규칙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박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배가 침몰하면 빚이 사라지는 최초의 보험인 모험대차에서, 일반 이자를 초과하는 20%의 금리가 바로 보험료의 시초였습니다. 이후 선주와 화주가 분리되면서 화물을 담보로 하는 화물대차로 진화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선체보험과 적하보험을 나누는 뚜렷한 기원이 되었습니다. 4000년 전 위험을 나누고자 했던 이 절박한 철학은 런던 로이즈 커피하우스를 거쳐 현재의 재보험 특약과 K-ICS 위험분산 규칙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 출처 및 참고
2. 로도스 해법(Lex Rhodia de Iactu) - 공동해손 원칙 최초 성문화
3. Go, S. (2009), Marine Insurance in the Netherlands 1600-1870 - Bottomry와 Respondentia의 금리 차이 분석
4. 영국 해상보험법 Marine Insurance Act 1906 제33조(Warranty), 제66조(General Average)
5. 본 블로그 1부: https://www.reinsurancepilot.com/2026/08/history-of-insurance-from-babylon-bottomry-to-lloyds-coffee-house-origin.html
⚖️ 법률 근거
- 상법 제862조(선박담보대출, 모험대차의 현행법상 잔존 규정)
- 보험업법 제638조(보험계약의 정의), 제669조(고지의무) - Utmost Good Faith 원칙의 현행법 계승
- 영국 Marine Insurance Act 1906 Section 17(Utmost Good Faith), Section 66(General Average)
본 콘텐츠는 모험대차와 보험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일반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보험상품 가입 권유나 법률·금융 자문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공개된 문헌, 대영박물관·로이즈 공식 아카이브 및 국가법령정보센터 자료에 근거하며, 개별 계약 해석은 해당 약관과 전문가 상담이 필요합니다. 본문 내 홈택스/손택스 링크는 보험료 세무처리에 대한 일반 안내를 위한 참고용입니다.
여러분의 공감(하트)과 Follow는 다음 편을 쓰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보험의 역사 3부: 생명보험은 어떻게 생겼나? 로마 콜레기아와 중세 길드, 핼리혜성이 만든 상부상조 이야기
보험의 역사 1부: 보험은 왜 생겼을까? 함무라비 모험대차부터 런던 로이즈 커피하우스까지, 4000년 위험분산의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