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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9일 일요일

보험의 역사 7부: 19세기 아시아와 유럽을 이은 위험 분산의 드라마: 재보험 중개사 Willis와 동경해상 120년 동행기

📦 한줄 요약
한 줄로 정리하면 1879년 아시아 최초 해상보험사 동경해상은 급격한 성장과 실적 악화로  어려움에 처했고, 살 길은 런던 로이즈뿐이었으며, 전설의 언더라이터 카가미 켄키치는 Willis Faber와 손잡고 로이즈 문을 두드렸고, 2∼3개월 걸리는 우편선 때문에 Lost or Not Lost와 최대선의원칙이 탄생했으며, 1996년 Willis Korea에서 그 120년 거래의 현장을 본 실무자가 풀어본 이야기입니다.  Willis Faber & Dumas와 Tokio Marine 120년 파트너십은 1879년 동시 창립부터 Gallagher Re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Willis Faber & Dumas 1879 로이즈 브로커와 Tokio Marine 120년 재보험 파트너십, Gallagher 합병 역사 썸네일
▲ Willis Faber & Dumas와 Tokio Marine 120년 파트너십. 1879년 동시 창립부터 Gallagher Re 현재까지 

1. 1879년 동경해상의 탄생과 첫 파산 위기 - 거대 위험 독식의 대가


1879년 서구와의 본격적인 무역을 시작한 일본은 해상 무역로를 보호할 금융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비롯한 자본가들이 뜻을 모아 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해상보험사인 동경해상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거대한 자연의 분노를 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초창기 동경해상은 근대적인 언더라이팅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화물선의 노후도나 항로의 위험성, 계절적 요인을 정밀하게 계산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보험을 인수한 결과 몇 번의 대형 선박 침몰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신생 보험사의 얄팍한 자본금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며 회사는 곧바로 존폐의 기로에 섰습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거대 위험 독식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인데, 단일 회사가 보유 자본을 초과하는 거대 위험을 재보험으로 분산하지 않고 홀로 떠안았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파산 시나리오였거든요. 지금도 중소형 보험사가 1,000억짜리 공장을 100% 보유하다가 대형 화재가 나면 같은 방식으로 무너집니다.


💡 실무적 통찰: 거대 위험 독식의 위험성
초기 동경해상의 위기는 단일 회사가 보유 자본(Capacity)을 초과하는 거대 위험을 '재보험(Reinsurance)'으로 분산하지 않고 홀로 떠안았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파산 시나리오를 보여줍니다. 지금도 중소형 보험사가 1,000억짜리 공장을 100% 보유하다 대형 화재 나면 같은 방식으로 망합니다.

2. 런던 로이즈의 굳게 닫힌 문, 그리고 Willis Faber & Dumas와의 운명적 만남

19세기 런던 로이즈 보험시장 거리, 1879년 Willis Faber & Dumas와 동경해상이 마주한 콧대높은 로이즈 언더라이터 시대
▲ 19세기 후반 런던 금융가. 동경해상 같은 아시아 신생사는 로이즈에서 위험 그 자체로 취급받았다.


19세기 런던 로이즈 보험시장 거리, 1879년 Willis Faber & Dumas와 동경해상이 마주한 콧대높은 로이즈 언더라이터 시대 모습. 19세기 후반 런던 금융가에서 동경해상 같은 아시아 신생사는 위험 그 자체로 취급받았습니다.


파산을 막을 유일한 길은 아시아를 넘어 막대한 자본이 모여 있는 세계 보험의 중심지인 런던 로이즈 시장에 자신들의 위험을 출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콧대 높은 로이즈 언더라이터들에게 아시아의 이름 모를 신생 기업은 위험 그 자체였고, 이 거대한 신뢰의 장벽을 뚫기 위해 동경해상은 전설적인 언더라이터 카가미 켄키치를 런던으로 특파했습니다.


윌리스 페이버와의 파트너십은 카가미가 런던 시장이 철저한 브로커 중심이라는 점을 간파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영국의 유력 보험 중개사인 윌리스 페이버, 지금으로 보면 글로벌 브로커 WTW와 Gallagher의 전신과 손을 잡고, 그들이 동경해상의 대리인으로서 로이즈 신디케이트들을 설득하도록 전략을 짰습니다.


포트폴리오 혁신도 함께 진행했는데, 카가미는 로이즈의 선진 언더라이팅 기법을 배워 일본으로 돌아간 뒤 불량 물건의 인수를 단호히 거절하고 런던 시장의 눈높이에 맞는 우량한 위험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전 동경해상이 아니라는 것을 숫자로 증명한 것이고, 이게 120년 거래의 첫 단추가 됐습니다.


Willis Faber & Dumas는 1879년 Lloyd's 브로커 등록을 했고 동경해상도 1879년 창립돼 동갑내기 파트너십이 됐으며, 카가미 전략은 브로커를 통한 신용 보증과 우량 포트폴리오 재구축이라는 투트랙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3. 수개월 항해와 Lost or Not Lost - 시공간을 초월한 재보험의 완성


로이즈 재보험 커버노트 원본, Lost or Not Lost 조항이 포함된 19세기 해상 재보험 슬립
▲ 실제 19세기 Lloyd's Cover Note. Lost or Not Lost 문구가 책임 개시일을 과거로 소급시킨다.


동경해상과 윌리스 페이버의 노력으로 마침내 '런던 커버(London Cover)'라 불리는 재보험 계약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열악한 통신 인프라는 실무적으로 엄청난 딜레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 이메일, 팩스 등의 통신 수단이 없었고 교통 수단도 증기선인 선박에 의존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인수한 화물선의 위험 명세를 적은 재보험 슬립(Slip)이 우편선에 실려 영국 런던에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2~3개월이 소요되었습니다. 즉, 런던의 로이즈 언더라이터가 슬립을 검토하고 서명하는 시점에는 배가 이미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거나, 반대로 태평양 한가운데서 침몰해 버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고가 났는지 안 났는지 모르는 이 기막힌 상황 속에서, 재보험의 '책임 개시(Attachment of Risk)'를 언더라이터의 서명 시점으로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해상보험법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개념이 바로 '멸실 여부 불문(Lost or Not Lost)' 조항입니다. 즉, "서명 시점에 이미 배가 가라앉았든 아니든 불문하고, 원수보험이 시작된 과거의 시점으로 소급하여 책임을 진다"는 파격적인 법리가 완성된 것입니다.



4. 시공간을 초월한 기적, 최대선의원칙(Utmost Good Faith)

로이즈 마켓 18세기 언더라이팅 장면, 최대선의원칙 Utmost Good Faith와 고지의무의 탄생 배경
▲ 로이즈 커피하우스 시절, 촛불 아래 슬립에 서명하던 언더라이터들. 믿음이 없으면 서명도 없다.


로이즈 마켓 18세기 언더라이팅 장면, 최대선의원칙과 고지의무의 탄생 배경. 로이즈 커피하우스 시절 촛불 아래 슬립에 서명하던 언더라이터들 모습인데, 믿음이 없으면 서명도 없다는 말이 그대로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로이즈 언더라이터들은 무엇을 믿고 수개월 전 출발하여 이미 침몰했을지도 모르는 배에 기꺼이 재보험 인수를 서명했을까요. 만약 일본의 원수보험사가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먼저 듣고도 이를 숨긴 채 뒤늦게 재보험 슬립을 보낸 것이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 극단적인 정보의 비대칭성과 도덕적 해이를 막아준 유일한 방패는 양 당사자 간의 절대적인 신뢰, 즉 최대선의원칙이었습니다. 철저한 고지의무가 있었는데, 로이즈는 일본의 보험사가 슬립을 띄워 보내던 당시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중요한 위험 정보를 한 치의 숨김없이 완벽하게 고지했다고 굳게 믿었고, 위반 시에는 가혹한 페널티가 있었습니다. 만약 훗날 원수보험사가 위험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 사실이 발각되면 그 계약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시 무효가 됐습니다. 이 원칙은 1906년 영국 해상보험법 제17조에 성문화되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 재보험 계약서의 첫 문장으로 살아 있습니다.


5. 1996-2000 Willis Korea에서 본 영국-동경해상-한국 경유 시스템 


저자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Willis Faber & Dumas Korea 지점에 근무하면서 이 구조를 직접 봤습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하던 Willis 영국 본사의 Far East 담당자들은 일본 동경해상을 방문하기 전후에 한국을 잠시 경유하여 한국 업무를 협의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서울 수송동 이마빌딩 사무실 풍경은 이랬는데, 런던에서 온 이사들은 항상 두 개의 슬립을 들고 왔습니다. 하나는 Tokio Marine Treaty 갱신 슬립이었고 하나는 한국 손보사들 Treaty 슬립이었습니다. 일정은 런던에서 서울로 와 한국 협의를 1박2일 하고, 다시 도쿄 동경해상으로 가 3박4일 머문 뒤 서울을 경유해 런던으로 돌아가는 게 고정 루트였습니다. 왜 그랬냐면 1879년 시작된 Willis와 동경해상 120년 데이터가 한국 요율의 벤치마크였기 때문입니다. Tokio Marine은 이 rate에 갱신했다, 너희도 비슷해야 한다는 논리였고, 한국은 아직 작은 시장이라 일본 방문 길에 같이 보는 구조였던 겁니다. 서글프지만 그게 90년대 현실이었습니다.


6. Willis → Gallagher, 120년이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


현재 당시 재보험을 담당하던 Willis Faber & Dumas는 미국의 보험중개사 갤러거에 합병되어 Gallagher Re가 됐습니다. 간판은 바뀌었지만 동경해상과의 120년이 넘는 거래관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1900년대 초 카가미가 만든 원장과 1906년 Lost or Not Lost, 최대선의원칙으로 쌓인 신뢰 데이터가 그대로 Gallagher 시스템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Gallagher Re는 동경해상 클레임을 가장 먼저 지급한 브로커 중 하나였고, 120년 거래는 그렇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공식 링크:
- Gallagher Re: www.ajg.com/gallagherre
- Tokio Marine History: 동경해상 120년사
- 홈택스: www.hometax.go.kr → 부가세 신고 → 면세사업자 - 재보험 중개 수수료 면세 확인 손택스 앱 동일


7. 결론 및 요약


핵심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1879년 동경해상은 급격한 성장과 실적 악화로  어려움에 처했고 Willis Faber와의 제휴로 런던 로이즈 문을 두드렸다는 점과, 우편선이 2∼3개월 걸리던 시절 Lost or Not Lost 소급 담보와 최대선의원칙이 없었다면 재보험은 성립할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Willis Faber & Dumas는 Gallagher로 합병됐지만 1996년부터 2000년 한국 경유 시스템에서 봤듯 동경해상과 120년이 넘는 거래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점입니다.

참고 및 법률 근거: Tokio Marine History 1879, Shibusawa Eiichi Foundation, Kenkichi Kagami London Mission 1890s, Marine Insurance Act 1906 Section 17 (Utmost Good Faith) & Section 6 (Lost or Not Lost), Lloyd's History - Broker System, Willis Faber & Dumas History - Lloyd's Broker Register 1879, Gallagher Re Acquisition 2021, 저자 Willis Faber & Dumas Korea 재직 1996-2000, KIRI 재보험의 역사 2021

Compliance Note: 본 글은 공개된 기업 연혁, 영국 해상보험법, Lloyd's 및 Gallagher/Tokio Marine 공식 자료와 저자의 직접 근무 경험을 기반으로 한 교육 목적 콘텐츠입니다. 특정 중개사 이용 권유나 재보험 거래 권유가 아니며, 상표권은 각사에 귀속됩니다. 재보험 계약 조건은 해당 원수사·재보험사·브로커 약관을 확인하십시오.


보험의 역사 7부 부록: 100년의 신뢰가 만든 금융의 기적: 동경해상과 윌리스 페이버(현 갤러거)의 파트너십

보험의 역사 6부: 자동차보험의 탄생, 1897년 최초 증권부터 의무보험·자율주행까지